1.빛의 밝기로 구분하는 건강
우리는 종종 반짝이는 별처럼 빛을 뽐내며 암컷을 찾아 풀숲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반딧불이 수컷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암컷들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밝고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사람들 입장에선 아름다운 별빛 축제지만 반딧불이에겐 온 힘을 다해 펼치는 처절한 구애 행동입니다. 반딧불이 성충의 수명은 고작 2주에 불과해서, 미친 듯이 빛을 내지 않으면 번식에 실패하고 맙니다. 암컷들은 수컷의 불빛 신호를 통해 어느 수컷이 가장 질 높은 영양분을 줄 수 있는지 판단하는데, 수컷이 내는 빛의 밝기는 곧 건강을 상징하기 때문에 암컷들은 건강한 알을 낳기 위해 풀숲에서 수컷들의 빛을 보고 있다가 맘에 드는 건강한 수컷이 나타나면 마찬가지로 빛을 내며 사랑의 답신을 보내고 짝짓기에 성공하게 됩니다.물론 반딧불이는 종마다 번식기가 조금씩 다르고 빛을 깜빡이는 정도도 달라 서로를 구분할 수 있어서 다른 종과 하룻밤을 보내는 불상사는 일어나질 않습니다. 이윽고 빛이 탁 꺼지면 수컷은 짝짓기에 몰입하고 정자와 함께 단백질 영양분을 가차 없이 쏟아붓습니다. 이 영양분의 양과 질에 따라 암컷이 낳는 알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암컷 역시 수컷이 내는 빛을 통해 수컷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반딧불이의 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
많은 사람들이 반딧불이의 빛을 짝짓기 용으로만 알고 있는데요. 사실 반딧불이는 알도 애벌레도 빛을 냅니다. 빛이 짝짓기를 위한 용도라면 굳이 성충이 되기 전에는 이렇게 빛을 낼 필요가 없을 텐데 도대체 이 녀석들이 내는 빛의 정체는 뭘까요.알, 애벌레, 번데기 모두 빛을 내면 천적의 눈에 잘 띄어서 위험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들은 '루시부파긴'이란 독성 물질을 갖고 있는데요, 그 독성이 워낙 강력해 비어드 드래곤 같은 작은 도마뱀의 경우 반딧불이 한 마리만 먹어도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야생의 천적들은 반딧불이가 이런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알아서 식단에서 제외합니다. 즉 얘네들이 내는 빛은 천적들에겐 경고 등인 셈입니다. 반딧불이의 성충이 내는 빛 또한 독소의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반딧불이 성충처럼 밤에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만 이들이 천적들로부터 안전한 이유는 몸에 지닌 독성 물질 덕분입니다.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반딧불이는 날아다니는 속도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느립니다. 지난 2018년 미국 보이시 주립대학의 제시 바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와 관련된 재밌는 실험을 했습니다. 반딧불이가 서식하지 않는 지역에서 박쥐를 잡아와 박쥐가 반딧불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 겁니다. 반딧불이와 일면식도 없는 박쥐는 당연히 반딧불이 독소에 대한 학습이 안 돼 있기 때문에 반딧불이를 거침없이 사냥했지만, 먹자마자 독성 때문에 곧바로 뱉어버립니다. 이후 두 번째 실험에서 박쥐는 반딧불이의 빛을 보고는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첫 번째 실험을 통해 반딧불이가 내는 빛이 경고등임을 학습한 거죠. 이렇게 학습이 끝난 박쥐에게 나방을 주면 곧잘 받아 먹지만 반딧불이를 주면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절대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반딧불이 꽁무니에 페인트를 칠하고 빛이 새어나오지 않게 가린 후 실험을 하면 박쥐는 학습한 내용을 잊어버리고 반딧불이를 사냥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반딧불이는 경고등으로 천적을 피하지만 실은 이 녀석들은 누군가의 천적이기도 합니다. 바로 반딧불이 애벌레를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이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성충과 달리 다슬기 달팽이 등을 잡아 먹는 육식성입니다. 애벌레가 날카로운 턱으로 달팽이를 문 다음 독침을 꽂으면 달팽이의 몸은 조금씩 녹고 애벌레는 독침을 빨대처럼 사용해 체액을 빨아 먹습니다.
3.남의 독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다시 빛과 독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반딧불이 중에는 루시부파긴이란 독성 물질을 지니지 않는 녀석도 있습니다. 바로 북미에 서식하는 포투리스 속에 속한 반딧불이입니다. 이 반딧불이 그룹은 빛은 내지만 루시부파긴 대사 유전자의 결함이 생겨 독소를 만들지 못합니다. 이런 진화적 결함은 1997년 아이스너 박사가 발견하고 그는 한 가지 더 놀라운 현상을 관찰합니다. 바로 포투리스 반딧불이 암컷이 독소를 지닌 다른 반딧불이 수컷을 유혹해 잡아먹고 이를 통해 체내의 독소를 저장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종의 수컷을 유혹하는 방법은 포티누스 반딧불이(포투리스 반딧불이와 다른 종) 수컷이 찍기를 위해 빛을 내면 포투리스 암컷은 해당 종의 암컷의 빛을 똑같이 흉내내 화답합니다. 이 화답에 깜빡 속은 포티누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포투리스 암컷에게 날아오고 포투리스 암컷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티누스 수컷을 잡아 먹습니다. 그래서 포투리스 암컷에겐 팜므파탈 반딧불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렇게 수컷 반딧불이를 잡아먹은 포투리스 암컷의 체내엔 루시부파긴 독소가 쌓이게 되며, 실제로 아이스너 박사의 실험 결과를 보면 보통의 포투리스 암컷 체내엔 독소가 거의 없지만 포티누스 수컷을 먹은 암컷들의 경우 독소의 양이 껑충 뛰어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독소를 축적한 포투리스 암컷이 알을 낳으면 그 알에도 어미로부터 전해진 루시부파긴 독소가 있어 천적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충이 되어가면서 점점 독소를 잃어가겠지만 어린 시절만큼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반딧불이의 빛, 그 반짝임엔 생존과 번식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 있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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